우크라이나 전쟁의 기원과 해결책
관리자  |  03/06/22  |  조회: 39  

2022년 3월 6일

사회와 종교:

제목: 우크라이나 전쟁의 기원과 해결책

저자: 박창형 목사

 

a. “단 1인치 비확장” 약속

1990년을 전후로 서방 국가들과 소련이 서독과 동독의 통일 및 소련 해체 과정 등을 논할 때 고르바초프 서기장에게는 통일된 독일과 NATO의 관계 및 포스트-소련의 러시아 안보가 가장 중요한 안건이었다. 즉 통일된 독일은 나토 회원국으로 남을 것인가? 그렇다면, 구 동독에 나토 군사력이 배치될 것인가? 소련으로부터 해체된 위성 국가들은 나토에 가입할 것인가? 나토는 계속 확장할 것인가? 나토의 기능은 무엇인가? 이런 안보 문제가 대두되자 1989년, 부시 대통령이 고르바초프 서기장과 만난 회담 자리(Malta Summit)에서 소련 해체 후 나토는 확장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했고, 서독의 겐셔 외교장관도1990년 1월 31일 독일의 통일이 이루어지고 소련이 해체된다 할지라도 이는 “소련의 안보를 위협하는 행동으로 이어져서는 안된다”고 선언하면서 “러시아의 안보를 위협하는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의 동유럽으로의 확장은 근본적으로 배제되어야 한다”는 ‘나토 비확장 원칙론’을 제안함으로 고르바초프 및 소련의 강경론자들을 안심 시켰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 나토 주요 회원국 정상들이 모두 나토의 비확장 원칙에 동의했고, 1990년 2월 제임스 베이커 국무장관과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모스코바에서 소련 해체 후 나토와 관련된 중유럽과 동유럽에 관한 구체적인 정책을 마련하는 자리에서 베이커 국무장관은 나토는 동유럽으로 “단 1인치의 확장도 없을 것”이라는 유명한 약속을 남겼었다. 그 후 계속해서 나토와 소련 간의 외교 활동을 강조하는 동시에 NATO의 군사 활동은 줄이겠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1990년 7월 5일의 ‘나토의 런던 선언 (The NATO London Declaration)’과 소련 군사 지도부의 나토 방문 등이 이어지면서 1991년 12월 26일을 기해서 단 한발의 총성도 없이 소련이 해체되기에 이르렀다.

b. 미국과 서방 세계의 배신

소련해체를 추진하던 고르바초프 서기장과 서방 세계 지도자들은 포스트-소련 후의 세계는 모든 국가들이 서로 협력하는 세상이 될 것이라고 내다보았고, 더 이상 나토가 존재 할 이유가 없다는 판단에 동의했었다. 소련이 해체된 후 러시아의 보리스 옐친은 자국 내의 강경 공산주의 잔재 세력을 억압하는데 심여를 기울였고, 1992년 미국을 방문한 그는 국회 연설을 통해서 과거의 공산 체제를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미국과 협력하는 안보 및 경제 체제를 만들어 가자고 했다. 후에 푸틴도 클린턴 대통령에게 러시아도 나토에 가입하기를 원한다고 표명했고, 미국-유럽-러시아가 융합된 안보 및 경제 제도를 추구하자고 제안했었다. 그러나 미국은 러시아를 제외한 유럽 안보 체제를 추진했고, 러시아를 불량국가로 조명하는 냉전 체제 2.0을 주도해 갔다. 미국의 속샘을 뒤늦게 파악한 옐친은 미국이 러시아를 배반했다고 주장하기 시작했고, 후에 푸틴은 미국이 러시아를 기만했다고 비판했다. 미국이 냉전 체제 2.0을 지향한 이유는 소련 해체 후 가파른 국방비 예산 절감이 이루어 지면서 위기에 몰렸던 군수산업체제에 몸담고 있던 집단 세력들의 전략이었다고 많은 전문가들이 해석하고 있다. 그 후 네오콘의 영향을 받은 클린턴 행정부(1993-2001)는 나토의 확장을 추진하기 시작했는데, 1997년 상원외교 정책부의 상임의원으로서 나토 확장을 지지하던 바이든은 “나토의 확장은 결국 러시아와 마찰을 빚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라고 공개적으로 밝힌바 있다. 또 미국의 소련 대사(1987-1991)로 활동했던 잭 매트락 대사도 “소련을 제외시킨 나토의 확장은 러시아의 안보를 위협하는 행위이며 이는 러시아와 군사적 마찰로 이어질 것이 분명하다”며 나토 확장에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했다. 다시 말하면, 나토 확장을 추진하던 네오콘들과 이를 반대하던 온건파들 모두가 나토 확장은 러시와의 군사적 마찰로 이어질 것이라는 결론에는 동의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1999년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가, 그리고 2004년에는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 9개 국가들이 나토에 가입을 하면서 서방 세계의 무기와 군사력이 이들 나라 곳곳에 배치되면서 러시아의 안보를 위협했다.

c. 러-우 전쟁의 원인과 해결책

궁지에 몰린 러시아는 자국과 1300마일의 국경을 맞대고 있는 우크라이나까지 나토에 가입하면 이는 반드시 전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황을 바르게 인식한 “1945”라는 언론 매체의 다니엘 데이비스 기자는 “러시아와 전쟁을 원하는가? 우크라이나를 나토에 가입 시키라”는 제목의 기사를 2021년 5월 13일 기재할 정도로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추진은 러시아와의 전쟁으로 이어질 것은 기정 사실로 받아들여져 왔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2017년 우크라이나에 $10억이 넘는 무기를 지원하면서 내분이 심했던 우크라이나에 내란을 자극했다. 그 후 바이든은 2021년 11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추진한다고 젤렌스키와 함께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동시에 미국으로부터 무기 지원을 받은 우크라이나 정부의 군부와 민병대는 러시아인들이 모여 사는 돈바스(Donbas) 등 여러 곳에서 러시아인들을 학살 하는 등 만행을 저지르기 시작했다. 즉시 푸틴은 서방 세계와 젤렌스키에게 군사적 행동을 중단할 것을 요구하는 동시에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중단을 요구했고, 러시아의 군사 이동을 시작했다. 미국 정보부는 러시아의 군사 이동 상황을 한 눈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그 후 2022년 1월 카말라 해리스 부통령이 유럽을 방문해서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절차를 마무리 짖는다고 공식 발표했다. 러-우 전쟁을 유발 시킬 마지막 단추를 누른 것이다. 이렇듯이 러-우 전쟁은 충분하게 예방될 수 있었다. 그러나 누군가가 이 전쟁을 원했던 것이 분명하다.

D. 전쟁의 종말을 바라며…

러-우 전쟁의 피해자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이다. 젤렌스키가 정말 애국자였다면, 전쟁 만큼은 막았어야 했다. 러시아를 지지하는 측과 서방 세계를 지지하는 측으로 분열되어 나라를 말아 먹을 지경으로 몰고 간 우크라이나의 ‘지식층’과 ‘지도자’들을 보면서 한국이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불필요한 러-우 전쟁을 우리는 절대로 지지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서방 세계에 쌓여 있던 무기 재고들이 ‘우크라이나 지원’, 자유, 민주화, 평화 등의 명목으로 대거 옮겨지고 있다. 젤렌스키가 참으로 나라를 사랑한다면 이 살생 무기들이 생명을 앗아가고, 건물을 전소시키고, 땅과 나라를 피폐화 시키기 전에 당장 서방 세계의 퍼펫 노릇을 중단해야 한다. 젤렌스키가 나토 가입을 포기하는 순간 전쟁은 종말된다.



나토국가들에 에워 싸인 러시아
Malta Summit
단 1인치의 확장이 없을 것이라고 약속한 베이커
미국회의사당에서 러시아의 과거를 신랄하게 비판했던 엘친
소련의 해체를 추진했던 주역 인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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