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학적 관점에서 보는 유가 상승, 인플레이션, 그리고 미국이 주도하는 경기 침체의 목적
관리자  |  05/22/22  |  조회: 42  

Intro

원유 가격이 폭등하고 있고, 개스 값부터 식료품에 이르기 까지 인플레이션이 심각한 수준입니다. 전문가들은 경기 침체를 피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고 이 상황이 오래 갈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현 상황은 1970년대 첫 개스 파동이 불러왔던 경기 침체와 흡사한 점이 많이 있습니다. 1970년대 일어 났던 오일 파동이 불러 왔던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가 불러온 국제 정세를 거울 삼아서 지금  우리가 당면한 유가 파동, 인플레이션, 경기 침체가 불러 올 수 있는 결과를 살펴 보려고 합니다.

 

A. 달러의 위기

2차 대전이 진행중이던 1944년 7월, 미국의 뉴 햄프셔 주에 44개국의 정상들이 모여서 미국 달러화를 기축 통화로 삼기로 결정한 브레튼 우즈 협정 (Bretton Woods System)에 도달했다. 그 전까지 금에 부여된 가치와 각 나라의 금 보유량을 기준으로 각 나라의 화폐의 가치와 각 나라가 찍어 낼 수 있는 화폐 양을 정했던 금본위제가 폐지되고 달러를 유통수단과 지불수단으로 삼게 되었다.

이 협정이 가능했던 이유는 전쟁 후 미국의 압도적인 경제력과 미국이 당시 세계 금의 65%를 보유한데 기인하고 있다. 아울러 전쟁으로 산업 기반과 전반적인 경제 제도가 초토화된 유럽과 일본은 미국에 절대적으로 의존할 수 뿐이 없던 때였다. 그러나 1950년 후반기부터 유럽과 일본의 경제력이 회복되었고, 반대로 미국은 경제력이 퇴보하기 시작했다. 이로 말미암아 달러를 더 이상 기축 통화로 삼을 수 없다는 요구가 대두되기 시작하면서 미국의 경제 기반이 되어 준 브레튼 우즈 제도가 위협을 받기 시작했다. 유럽과 일본은 계속적으로 눈부신 경제 부흥을 이루었으나, 미국은 베트남 전쟁 비용과 자국 내 소셜 프로그램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서 달러를 무한정으로 찍어 내면서 인플레이션 (즉 달러의 가치가 떨어 짐)과 함께 걷잡을 수 없는 적자 예산에 시살렸고 달러의 약세를 부추겼다.

브렌트 우즈 제도는 미국이 금 1온즈당 $35라는 비율로 달러대 금 보유량을 유지하는 조건을 근거로 달러를 기축 통화로 채택한 것인데, 미국은 책임과 원칙을 어기고 달러를 마구 찍어 대기 시작했던 것이다. 예를 들어서, 1959년에는 미국의 외체는 약 $2백억 달러로서 미국의 금 보유량과 거의 비례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1967년에 이르러서 외체는 $3백 6십억에 달한 반면에, 금 보유량은 $1백 2십억 달러에 이르렀고 1971년에 이르러는 외체의 ¼도 미치지 못하는 분량을 보유했다. 만약 채권국들이 금으로 환불을 요구할 경우, 미국은 책임 이행을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불안이 날로 고조되어 갔고, 유럽과 일본 및 OPEC 회원국들이 항의와 불평을 쏟아 내기 시작하면서 대안책 마련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다시 말해서 ‘달러 위기’가 임한 것이다.

 

B. 미국의 대응책

달러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케네디, 잔슨, 닉슨 대통령 등이 다양한 대응책을 내 놓았으나 모두 임시 방편에 지나지 않았고, 1971년을 기해서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무역 적자를 내면서 패닉 상태가  트리거 됐고 달러 위기는 극에 달했다. 궁지에 몰린 닉슨은 1971년 8월 15일, 달러와 금이 결부된 교환비율 관계를 폐지한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했다.  금의 보유량과 상관 없이 달러가 스스로 통화 가치를 갖는 상황을 선언 한 것이다.[1] 세계가 닉슨이 내 놓은 임시 방안책을 논하는 동안에 데이빗 로크펠러는 ‘달러 위기’를 해결할 근본 대책을 조용히 마련하고 있었다.

 

C. 데이빗 로크펠러와 1973 5월의 빌더버거 회의

1973년 5월 11일부터 13일까지 네덜란드의 솔트쇼바덴 (Saltsjobaden)에 위치한 빌더버그 호텔에서는 국제 정세를 바꾸게 될 중요한 안건을 논하는 회의가 (비밀리에-비공식적으로)열렸다.[2] 1954년부터 세계 각지에서 정부, 경제, 군부, 대학, 외교, 언론, 노동 조합 등을 대표하는 인물들이 빌더버그 회의에 참석하여 다양한 주제를 논하고 결정했는데, 1973년 회의 때는 에너지와 관련된 주제를 다루었다.[3] 회의 기록을 보면 세계 정세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사람들의 생각 (mind-set)을 엿 볼 수 있는데, 그 중에서 오늘 주제와 연관된 몇 가지 요점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 미국 대표자로는 데이빗 로크펠러가 Chase 은행을 대표해서 참여했고[4], Lehman Brothers를 대표하는 George Ball, ARCO의 Robert Anderson, BP (British Petroleum) 의 CEO인 Greenhill 등 세계 오일 업계와 은행 대표자들이 대거 참여했다.
  2. 당시 세계 에너지의 60%를 소비하는 동시에 80%에 해당하는 에너지 수출을 관리하는 미국과 유럽과 일본이 서로 긴밀하게 협력해야 하는 상황이 임했다고 선언했다.
  3. 향후 20년을 내다 볼 때, 1972년 매년 평균 4-7백만 배럴의 오일을 수입하는 미국은 1980년에 이르면 1천 백만 배럴을 수입해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럽과 일본의 수입량은 매년 1천 8백만 배럴에서 3천만 배럴로 증가할 것이고, 매년 1천 8백만 배럴을 생산해 내고 있는 중동은 1980년에는 3천 5백에서 4천만 배럴을 생산해 내야 세계 경제가 차질 없이 발전할 수 있게 된다고 전망했다.
  4. 중동은 미국으로부터는 $2십 3억 달러에서 $1백 8십-$2백 4십억 달러를, 유럽으로부터는 $8십 5억 달러에서 $2백 3십-$3백 십억 달러를, 일본으로부터는 $3십억 달러에서 $1백 2십억-$1백 6십억 달러를 벌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pg. 23)
  5. 이런 배경을 두고 세 가지 문제가 의논되었다.
  6. 세계의 경제 안전과 발전을 위해서 OPEC 국가들이 생산량을 늘이기 위해서 재투자를 해야 하는데, 퇴보된 정치 및 문화적 상황으로 인해서 스스로 세계가 필요로 하는 생산량 증가에 관심을 갖지 못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7. 세계가 보지 못한 거액의 페트로 달러가 몇 국가에 집중될 경우 중동 국가들이 서방 세계가 원하지 않는 지나친 파워를 행세 할 수 있게 될 것이며;
  8. 세계 통화 정책에 미칠 영향과 남아 돌게 될 거액의 페트로 달러를 어떻게 재 활용할 것인가를 의논했다. (아니면 세계 경제가 위협을 받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내다 보았다.)
  9. 서방 세계가 1세기를 거쳐서 많은 희생을 하며 어렵게 개발해 낸 기술과 테크놀러지에 의해서 개발된 석유 시장을 OPEC 국가들이 아무런 대가를 치르지 않고 국영화 하여 이득을 취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10. OPEC 국가들의 정치는 대체로 불안정하고, 이란과 이라크, 이라크와 쿠웨이트, 사우디 아라비아와 오만 및 아부다비, 리비아와 아랍 국가권 간의 대립이 중동 지역의 불안을 더하는 요소이며, 이런 국가 간의 경쟁 및 대립 상황은 서방 세계 오일 회사들의 위치를 불투명하게 만드는 요소라고 지적하면서 지금까지 오일 회사들과 OPEC 국가가 협상하던 제도를 버리고 오일 회사들이 속한 국가도 함께 협상에 참여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다시 말해서 엑손 (Exxon)회사와 이란 정부가 협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란 정부와 미국 정부가 협상을 해야 하는 상황이 다가 왔다고 지적한 것이다. 이는 미군의 개입 가능성을 의미한 제안이다.)
  11. 아랍 국가권들과 이스라엘의 문제를 놓고 의논 했다. 이스라엘과 미국의 프로-이스라엘 정책으로 인해서 중동 국가들이 미국과 유럽 국가들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어 가고 있고, 이는 중동인들의 불만을 지펴 중동 국가들을 통치하고 있는 정부의 불안정한 상태로 연결지어 지고 있다고 지적했으나, 미국-이스라엘 관계는 손댈 수 없는 문제라고 포기했다.
  12. 고로, 각 국가의 경제 안전과 발전이 위기에 놓여진 상황이라며 이 문제는 각 국가의 안보와 관련되 문제라고 연관 지었고, 눈 앞으로 다가온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소비-수입 국가는 지금까지 취해 온 방법과는 “현저하게 다른 특출한 행동”을 취해서 중동 국가들의 관심을 끌어 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내용을 읽으면 군사적 행동을 의미한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
  13. OPEC 국가들도 위기에 몰린 달러에 대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미국이 “ 문제의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 놀라운 행동을 취하지 못할 경우” 중앙 은행 제도가 위협 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 부분에서도 군사적 행동을 의미한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
  14. OPEC국가들이 달러의 약세로 인해 원유 값을 인상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데, 이는 당연한 이치라며 높게는 400% 이르는 가격 인상이 가능 것이라고 논의했다.
  15. 원유 값이 오를 경우 발생하게 될 두 가지 이슈를 깊게 의논했다. 첫째로, 중동이 감당할 수 없는 양의 달러가 OPEC 국가들로 몰려 들 것인데, 그 여파에 대하여 깊게 의논했다. (서방 국가의 은행들이 중동에 집중 될 페트로 달러를 관리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둘째로, 원유 가격이 인상되면 미국과 서방 국가들과 일본은 어느 정도 여파를 견뎌 있지만, 가장 피해는 개발도상국들이 입게 것이라고 지적했고, 세계적인 경기 침체를 불러 것이라고 내다 보았다.

 

D. 1973 10월의 키퍼 전쟁 (the Yom Kippur War) 여파

빌터버그 회의 5개월 후인 1973년 10월 6일, 이집트와 시리아가 이스라엘을 공격했다. 당시 미국의 국가안보 보좌관이자 대학원 시절부터 로크펠러의 서클에 들어 있었던  키신저는 사전에 이스라엘과 이집트와 시리아 등을 오 가며 많은 비밀 대화를 나누었는데, 미국 내 정보 기관들이 가지고 있던 중동 국가들과 이스라엘에 관한 정보를 철저하게 통제했다.[5]  1972년부터 워터게이트 사건에 휘말리기 시작했던 닉슨은 거의 무기력한 상황에 처해 있었고,  욤 키퍼 전쟁이 일어 나기 한달 전인 1973년 9월에 키신저는 국무부 장관직을 겸하게 되는데, 키신저는 전쟁과 관련된 미국의 모든 정책을 총 지휘했다. 아랍-이스라엘의 욤 키퍼 전쟁으로 말미암아 일어 난 결과를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 전쟁으로 말미암아 유전 가격은 배럴당 $2.90에서 1974 1월에는 $11.65 인상된다. 빌더버그에서 예상-계획(?) 했던대로 정확하게 400% 인상되었다.[6] (1949년부터 1970년까지 평균 오일 가격은 배럴당 $1.90이었다.) 가격 인상 외에도 OPEC은 오일 생산량을 축소했고, 미국과 중동으로부터 원유를 공급받아 유럽 전지역으로 원유를 공급하는 항구가 있는 네덜란드에 오일 공급(embargo)을 중단했다.
  2. 미국은 헨리 키신전와 재무부의 지시에 따라 가장 페트로 달러가 집중된 사우디 아라비아와 이란과 사전에 계획을 세우고 몰려 드는 달러를 미국과 영국의 은행들이 관리하는 제도를 마련했다.[7] 결과로 몇 몇 미국과 영국 은행들에 상상을 초월하는 달러가 몰려 들었다. 1974년 한 해 동안에 OPEC 국가들에 몰려 든 $5백 7십억 달러의 60% 이상이 미국과 영국 은행으로 몰려 들었고, 70% 이상이 해외 주식 시장 및 채권 시장과 부동산에 투자 되었다. 키신저에 의해서 1974년 6월 8일, 미 국무부와 사우디 아라비아 정부는 비밀리에 “미-사우디 공동 경제 협력 위원회”를 결성하고 사우디 정부의 기금 관리를 미국이 도맡는 제도를 마련하기도 했다.
  3. 아서 번스 (Arthur Burns)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은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원유에 대한 가격과 공급의 조작(“manipulation”)은 공교로운 시기에 이행 되었다. 1973년 중반기 때 미국의 상업 상품 각격은 매년 10%가 오르고 있었고…산업 자재는 공급 부족난을 겪고 있었다.” [8] 지금의 상황과 너무 흡사한 상황이었다.
  4. 오일 가격 상승은 (빌더버그 회의 예상했던 대로) 물가 상승과 함께 경기 침체를 불러 왔다..
  5. 아랍-이스라엘 전쟁으로 말미암아 중동 지역의 정세가 불안정해 졌다. (이스라엘과 미국의 중동 정책은 중동 지역에 불안과 갈등을 조성하는데 있다. 이는 유가의 가격을 낮추고 이스라엘의 안보에 도움이 되는 정책이다.) 전쟁이 또 어느 곳에서 유발 될지 전혀 예상하기 어려운 불안한 상황이 초래된 것이다. 불안에 떨게 된 아랍 국가들의 정치인들은 내국의 안전과 국가 안보를 위해서 미국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 뿐이 없었다! 통화 기금 정책의 변화를 촉구하던 중동 국가들은 더 이상 달러에 관한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OPEC 국가들의 안보를 보장 받는 조건으로 달러로만 원유를 판매한다는 결정에 동의했다. 이로서 달러는 이상 위협 받지 않고 다시 국제 통화 기금의 자리를 굳히게 되었다! 1975 OPEC 국가들은 달러로만 원유를 구입할 수있다는 정책을 공식적으로 재발표 했다.  
  6. 특히 미개발도상국들 (Least Developed Countries: LDC) (빌더버그 회의에서 예상 한대로) 가장 삼한 타격을 입었다. 자체내 경기 활동은 정체 되었고, 경기 활성화에 사용되었어야 할 (여유) 자본은 원유를 구입하는데 사용하는 결과가 일어났다. 아울러서 세계를 강타한 경기 침체는 소비 감소를 가져왔고, 이는 LDC 국가들의 수입 출처이던 자연 원료 (raw material) 가격의 하락이라는 악순환을 불러 일으켰다. 문제는 계속 문제를 낳았다. 70년대 초기 때 LDC 국가들의 연 평균 예산 적자(deficit)는 $60억이었으나 1974년에는 네배로 불어난 $2백 6십억 달러에 달했고, 1976년에는 감당할 수 없는 $4백 2십억 달러에 달했다. 더 큰 문제는 이 가난한 국가들이 진 빚이었다. IMF 자료에 의하면, 이 국가들의 외체는 (foreign debt)은 1973년 $1천 3백 3십억 달러에서 1980년에 이르러는 $5천 5백 5십억 달러, 즉 다섯배로 늘어 났다. 1981년에는 $6천 1백 20십억 달러로 늘어났다! 페트로 달러를 손에 움켜 쥔 서방 세계 은행들 (주로 미국과 영국 은행들)은 자금에 허덕이는 LDC 국가들에게 재융자를 해 줌으로 이들은 남의 돈을 남에게 빌려 주면서 큰 돈을 벌 수 있었다!  그러나 LDC 국가들은 악순환의 덫에 걸려 들어 헤어나지 못했다.
  7. 1975년 8월, 빚에 억눌린 85개 국가 대표자들이 문제의 해결점을 찾으려 Group of Non-Aligned Nations라는 명칭을 갖고 콜롬보 스리랑카에 모였다. 각 국가 대표자들은 각 나라가 오일 쇼크라는 직격탄으로 인해서 높은 실업율과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를 겪게 된 피해 국가라고 설명했고, 굶주림과 질병 등에서 벗어 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내는 공정하고 정의로운 새로운 세계 경제 제도가 필요하다고 선언했다. 이를 위해서 개발 국가들이 가지고 있는 공업 기술 및 테크놀러지가 LDC 국가로 이양되어야 하며, 국제 통화 기금 정책이 새롭게 점검되어야 하고, LDC 국가가 감당할 수 있는 투자가 이루어 져야한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도, 감당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각 국가의 경제 활동과 발전을 막고 있는 빚과 이자를 재정리 해야만 한다고 선언했다. 1980년 이자율을 20%에 달했었다! Group of Non-Aligned Nations는 이 문제를 UN 회의 때 다룰 논제로 정함으로 서방 국가들이 이 문제를 외면할 수 없도록 했다.
  8. 아르헨티나-영국의 Falkland Island 전쟁. 1982년, 당시로는 세계에서 3번째로 많은 $3천 8백억 달러의 외채를 앉고 있던 아르헨티나가 빚을 감당할 수 없어서 디폴트를 선언하려 하자 서방 세계는 본을 보여 주어야 한다는 취지로 미국이 주도하는 NATO의 군사력을 동원해서 영국을 도와 영국-아르헨티나 전쟁을 도왔다. 영국-아르헨티나 전쟁은 “제 3세계의 빚의 위기”와 관련된 채무국과 렌더국 간의 오묘한 문제가 깔려 있는 전쟁이었다.
  9. 현재 상황과 같이, 오일 회사들과 월스트릿 은행의 수익은 하늘을 치솟듯 증가했다. 1950년대부터 세계적 기업으로 발전한 오일 회사들과 월스트릿 은행들은 1970년대의 오일 쇼크가 가져 온 페트로 달러로 인해서 세계적 기업들로 우뚝 자리를 잡았다.

 

E. 경제개발도상국들의 경제 활성을 마비 시키고 인구 증가를 억제하려는 미국의 외교 정책

달러 위기를 맞았던 미국은 미국의 달러를 기축 통화로 유지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 1970년대부터 미개발도상국들의 경제 발전고 인구 증가를 억제하는 정책을 수립했다! (많은 국가들의 경제가 발전할수록 달러의 가치가 떨어지는 관게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1. 인구 통제

토마스 맬더스 (Thomas Malthus)가 저술한 ‘인구론 (1798년)’은 많은 서방 세계 정치인들에게 영향을 미쳐 왔다. 그는 인구는 기하(등비)급수적으로 증가하지만, 식량은 산술(등차)급수적으로 밖에 증가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인구 증가를 조절하지 않을 경우 과잉 인구로 인해서  식량부족과 범죄 등 그 외 많은 문제를 당면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이 이슈는 앞으로 깊이 있게 다루어야 한다. 왜냐하면, 세계를 지배하는 많은 사람들은 이 주장을 받아 들여 낙태 등 다양한 방법으로 ‘불필요한’ 인구 증가를 억제/통제해 왔다. 저들에게 있어서 전쟁은 인구 증가를 억제/통제 하는 한 방법이기도 하다.) 키신저는 인구 증가와 제 3세계의 경제 발전을 미국의 국가안보와 연결지어서 이 두 분야를 중요한 외교 정책에 포함 시켰다. 1974년 4월, ‘키신저 리포트’로 명칭되기도 하는 국가 안보 정책 각서를 통해서 키신저와 당시 정책 입안자들의 생각을 엿 볼 수 있다. (이 공문의 제목은 “세계 인구 증가가 미국 안보에 미치는 영향-National Security Study Memorandum 200: Implication of Worldwide Population Growth for U.S. Security and Overseas Report”이다.[9]) 키신저 리포트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골자로 담고 있다.

  1. 미국 경제는 미네랄 등 국외에 널려 있는 자연 원료를 필요로 한다. 미국이 필요로 하는 이 자연 자원이 방해 없이 미국에 공급되려면 관련 국가들의 정치, 경제, 사회적 상황 등이 미국의 관심 거리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이 관점에서 볼 때 두 가지 이슈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첫째로, 만약 이 국가들의 경제가 발전하게 되면 미국이 필요로 하는 자원 원료를 내국의 경제 발전을 위해서 사용하려 할 것임으로 가격 상승과 함께 경쟁이 늘어 날 것이다. 둘째로, 이 관련 국가의 인구가 증가하게 되면 젊은 세대가 늘어 날 것이고, 젊은 세대는 자국이 가지고 있는 자원을 자국민을 위해서 사용하도록 정부에 압력을 가할 것이다. 고로, 미국은 이 국가들의 경제 발전과 인구 증가를 억제하는 정책을 펴야 한다! (믿겨 지지 않을 수 있지만, 키신저 리포트는 이러한 내용을 글로 명시하고 있다!)

이 리포트는 다음과 같은 13 국가를 지목하고 있다. 브라질, 파키스탄, 인디아, 방글라데시, 이집트, 나이제리아, 멕시코, 인도네시아, 필리핀, 태국, 터키, 이디오피아, 콜롬비아.

 

2. 예: 멕시코

멕시코는 서방 세계가 개발도상국가들을 대하는 처사에 불만을 품었다. 호세이 포르틸로 대통령 (1976년-1982년)은 자국의 원유를 기반으로 삼아 경제 개발을 이루어 내기로 결심하고 도로를 닦고, 공장을 세우고, 핵 발전소를 세우고, 농업과 공업 분야의 근대화를 추진했다. 그러나 미국은 “우리 바로 옆에 또 다른 일본을 절대로 허락 할 수 없다”는 정책을 채택했다.[10] 미국은 멕시코가 추진하는 근대화 정책을 저지할 구체적인 정책을 마련했는데, 포르틸로 대통령의 재선이 있기 전해인 1981년부터 멕시코의 페소(Peso)를  평가절하 한다는 스토리를 월스트릿 저널과 미국 주요 언론을 통해서 발설되기 시작했다. 이로말미암아 멕시코 내에서는 경제에 대한 불안이 고조되기 시작했고, 페소가 미국으로 몰려 들기 시작했다. (부동산 투자 등에) 1982년 2월, 포르틸로 대통령은 “숨은 외국 세력”이 멕시코의 경제 발전을 방해하고 있다고 공격했고 미국으로 유출되는 거대한 자금을 막기 위해서 멕시코 내 모든 은행을 국유화 한다고 밝히는 등 엄격한 규정을 발표하기에 이르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2년에 이르러서 $7백 6십억에 달하는 멕시코의 페소가 미국으로 유입되었다. 많은 사업들이 빚에 허덕이다가 파산하기 시작했고 전반적인 생활 수준이 악화되기 시작했다. 바로 전년까지 개발도상국 중에서 가장 빠른 경제 발전을 이루던 멕시코는 1982년 봄에 이르러 대혼란에 접어 들었다. 1982년 8월, New York Federal Reserve 본부에는 100여명의 미국 은행 대표자들과 멕시코의 재무장관 Jesus Silva Herzog가 긴급 회의를 가졌고, 이 자리에서 헤르조그 장관은 멕시코는 $8백 2십억에 달하는 빚을 값을 길이 없을 뿐 아니라 빚에 대한 이자를 값을 길도 없다고 시인했다. 1982년 10월, 포르틸로 대통령은 U.N.에서 감당할 수 없는 “외채의 이자와 자연 원료 가격의 하락이라는 두 가위가 멕시코의 경제 발전을 막는 요소”라며 세계 재무 시프템은 많은 나라들을 “암흑기로 빠져 들게 했다”고 불평을 토했다. 그는 이 문제는 더 이상 채무국의 책임이 아니며, 채무국의  권한 밖의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빚의 올가무리에 묶여 있는 국가들은 마치 미국과 유럽의 종속국(“vassals”)이 된 상태라고 비판했다. 고로 약소 국가들이 빚에 대한 책임을 이행하지 못할 경우, 책임은 렌더 국가들에게 있다고 경고했다. 이 모든 상황을 지켜 본 한 IMF 관리자는 “이럴 수 뿐이 없다”고 진술했다.[11] 레건 행정부는 “New York 은행들을 어떻게든 살려 내야 한다”며 IMF의 단속 기능을 넓히는 반면에 남미 국가들로부터 더 많은 자연 원료와 물품들을 저렴한 가격으로 수입하는 경제 대안책을 제시했다.

 

F. 결론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는 다양한 원인에 근거할 수 있다. 그러나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발생했던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는 1973년 5월 빌더버그 회의에 참석한  세계적인 파워 엘리트들이 채택한 정책에 의해서 일어 난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1973년의 오일 쇼크가 불러 온 결과는 모두 빌더버그 회의 때 예상(계획)했던 일들이다.[12] 자세하게 보면  이번에 찾아 온 경기 침체와 인플레이션은 1970년대 상황과 유사한 점이 많이 있다.

--중국과 러시아와 이란 등이 미국의 달러를 대치할 방안을 신중하게 모색해 왔다

--지정학적 관점에서 미국이 가장 위험하게 여기는 중국과 러시아가 안보 및 경제 협력을 이루기 위해서 동맹 관계에 접어 들어갔다. 이들은 세계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미국을 견제 하려는 공통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다.

--코비드 펜데믹을 계기로 많은 ‘노동자’들이 일을 꺼려 함으로 대기업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1970년대에도 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 민권 운동, 히피 ‘운동’에 의해서 “일을 해야 하는 개미 때”들이 일을 거부했었다.  높은 잍플레이션과 오래 간 경기 침체로 인해서 ‘개미 때’들은 정신을 차리고 보수에 크게 상관치 않고 아무 일이라고 하려는 자세를 서서히 갖게 되었다.

--오일 회사들이 하늘을 치 솟는 수익을 누렸다.

미국은 이번 경기 침체를 통해서 세 가지 목적을 달성하려고 할 것으로 보인다. 가장 목적 대상은 미국이 쥐고 있는 세계적 헤게모니를 위협하려고 하는 중국을 잡는데 있다. 세계 경제  침체는 소비의 감소를 불러 올 것이며, 이는 중국 경제의 바탕이 되는 제조업계에 치명적인 일침을 가할 것이다.[13] 이와 함께 높은 원유 가격은 70%의 에너지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중국에게 막대한 경제적 부담을 안겨주고 있다. 미국은 이번 경기 침체를 통해서 중국의 경제가 일어 서지 못할 정도의 치명적인 영향을 가하려고 할 것이라고 본다. 아울러서 이번 경기 침체 기간을 통해서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 미국의 소비마저 줄이고, 새로운 공급망(supply chain) 구성하고, 중요한 분야에서 중국과 미국간의 decoupling 이루어 내는 것이 최종 목적일 있다.[14] 그러나 미국이 우월한 위치에서 중국 정부의 방해가 없는 투자의 보장과 미국의 다국적 기업들이 영업 비밀을 지키며 시장을 넓혀 갈 수 있는 환경 및 기밀 정보 핵킹을 중단하라는 요구 및 협상을 추진할 것이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미국을 위협하기 위해서 중국과 손 잡은 러시아의 경제를 제압하여 두 나라가 힘을 합해도 미국을 위협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도록 압박을 가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본다.)

두 번째는 미국의 달러의 위상을 지켜 내는 것인데, 반미 감정과 달러에 대한 불만이 증폭하고 있는 중동에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서 친 환경 및 차 세대 에너지에 의존하는 경기 체제로 전환하는데 집중하는 반면에 유럽에 미국산 에너지를 수출할 제도를 만들어 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미국이 마음 먹으면 중동 지역에 불안과 전쟁이 가능함으로 중동은 미국과 긴밀한 관게를 유지할 수 뿐이 없는 상황이다. 아울러서 미국은 중국과의 경쟁을 피하는 차별된 경제 체제를 마련하는데 집중할 할 것으로 보인다. 벌서 ExxonMobil 등 정유 사업의 대표 기업들은 정유 시설과 관련된 자산을 처분하고 있고 새로운 투자 분야를 찾기 위해서 BlackRock의 래리 핀크와 밀접한 대화를 나누고 있다.[15] 셋째는 약간의 여유 자금을 근거로 일을 거부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태도를 바꾸고 임금을 낮추는데 있다고 본다. 1930년대의 대공항을 예로 본다면, 중산층이 가지고 있는 주식 등 많은 '재산'이 지워질 것이다. 

아울러서 외채를 앉고 있는 약소국들은 심한 경제 난을 비롯해서 이자로 인한 debt-tsunami 휘말려 것이다. IMF 다시 본색을 드러내고 국가의 경제에 간섭할 것이다. (스리랑카와 파키스탄은 벌써 외채로 인한 심각한 문제에 접어든 상태이다.) 결국 모두를 (집권자들의 시각에서 보는) 원위치로 돌려 보내는 목적을 가지고 추구하는 경제 정책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면에서 보면, 경기 침체와 인플레이션은 장기적으로 갈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상황은 우리 개인들이 만들어 내거나 선택해서 일어 난  상황이 아니고, ‘거시적인 안목’을 가진 워싱턴 파워 엘리트들이 유발 시킨 상황이니 어려움이 있더라도 누구를 탓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가지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개스 값이 갤런 당 $10까지 올라 갈 수 있음으로 모든 면에서 소비를 줄이는 방법을 택하는게 안전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참고로, 개스 값이 올라가면 다른 분야의 소비가 감소 되는 결과를 낳는다.)

 

참고:

빌더버그 회의에 참석했던 데이빗 로크펠러는 20세기 미국과 세계 정치를 주무른 인물이다. 그는 트루먼 행정부때부터 (1945년--1953년) 로크펠러 가문이 가지고 있는 거대한 재력과 인맥을 가지고 20세기 미국의 경제, 외교, 군사 정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한 예로서 헨리 키신저 (Henry Kissinger)와 카터 대통령, 카터 행정부에서 국가보안부의 국장을 지낸바 있는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Zbrigniew Brzezinski)를 길러 낸 인물이며, 1946년에 ‘로크펠러 은행’으로 불리는 Chase National Bank에서 일하기 시작해서 1961년부터 1981년까지는 CEO로 지내면서 중동의 오일 머니와 세계 국가와 거물급 회사들의 재산을 관리하면서 Chase 은행을 오늘 날 세계 제 1위의 은행인 JP Morgan Chase은행으로 자라게 하는데 공을 세운 인물이다.데이비드 로크펠러를 공부 해야만이 그가 추구했던 세계 정부와 20세기의 미국의 국내 및 외교 정책을 이해 할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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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세한 내용은 the Smithsonian Agreement 를 참조.

[2] 빌더버그 회의는 1954년부터 시작되었다.

[3] 두 가지 주제를 다루었는데, 에너지 문제 외에 유럽의 안보와 관련된 주제를 다루었다.

[4] 물론 로크펠러는 미국 뿐 아니라 세계적 오일 tycoon 일가를 대표한 거대한 인물이다.

[5] 기회가 주어지면 욤 키퍼 전쟁에 키신저가 어떤 역활을 했는지 살펴 볼 것이다.

[6] Federal Reserve History. Oil Shock of 1973-1974.

[7] William Engdahl, A Century of War, p. 117. (1992)

[8] Federal Reserve History. Oil Shock of 1973-1974.

[9] 아울러서 National Security Decision Memorandum 314도 참조 하십시오.

[10] 기회가 주어지면 자세하게 다루겠지만, 미국은 자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멕시코와 캐나다가 어느 선상 이상의 경제 발전을 이루는 것을 반대하는 정책을 펴 왔다. 특히 군사력 팽창은 극구 반대한다.

[11] Michael Hudson, Super Imperialism: The Origin and Fundamentals of U.S. World Dominance. (2003)

[12] 빌더버그 회의 참여자들은 1972년과 그 이전부터 1973년 회의 내용을 준비해 왔다.

[13] 최근 Amazon, Target, Wal-Mart  등 소매와 관련된 업체들의 주식이 크게 하락했고, 제프 베조스 등이 바이든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고 나선 점으로 볼 때 미국 정부는 소매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정책을 의도적으로 채택한 것이 확실하다고 볼 수 있다.

[14] $10조에 달하는 자산을 관리하는 BlackRock의 래리 핀크 (Larry Pink)의 인터뷰를 보고 이런 결과에 나름대로 도달했다. 미국의 경제-외교 정책은 래리 핀크와의 협의하에 이루어 진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20세기 동안에는 데이빗 코르펠러가 그 위치에 있었다.)

[15] Oil & Gas Journal, May 19,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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